시조공 유래(始祖公 由來)
우리 창녕성씨의 시조는 고려중기때 창녕지방의 토호(土豪)였으며 향직의 으뜸인(城主) 호장 중윤 이셨던 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고려문종(1047-1082)부터 성(姓)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할수 없게 제도화 함으로서 고려 고종때(1214-1259) 지방 통치권자로서 성씨의 성(姓)을 창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상계는 밝혀지지 않는다.
시조께서는 정초 지방관리의 임무인 예궐숙배(詣闕肅拜)차 조정사(朝正使)로 송경(개성)에 입경 하였다가 병으로 별세 하시니 조정에서 우마차와 장례비를 내렸으나 아들인 시중공(侍中公)께서는 사양하고 지게로 몸소 시신을 지고 천리길을 여러날만에 창녕 청산원에 이르러 가숙하셨는데 밤사이 눈이온 후 아침에 보니 범의 발자국이 시신으로부터 서쪽 자그마한 산등성이에 범의 발자국이 멈춘곳에 쌓인 눈이 묘자리 만큼 전부 녹아있어 길일을 택해 안장 하시었으니 이곳이 지금의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맥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