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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世) 이헌공(휘 여완)의 행장
작성자 관리자 [2017-05-31 1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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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집은 선죽교근처에 있었는데 포은 정몽주와 교분이 두터웠다. 포은이 충절을 바쳐 죽던 날에도 공을 방문하려다가 선죽교에서 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이태조는 개국후 명문대가들을 한양으로 이사 시켰는데 공은 송경(고려수도)에 있는 집을 막내아들인 낭장공에게 물려주고 남문밖 한림동에 우거하고 성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태조가 공을 흠모하여 대우하고 수레를 보내어 경회루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공은 백의관 차림으로 뵈오니 이른바 서궁양청 포의연 이라 한다. 이때 판삼사사(종1품) 정도전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바쳤다.
"금원에 봄이 깊어 꽃이 만발한데 원로들 초청하여 주연을 베풀었네 때마침 하늘에서 단비를 내리니 온통 우로의 은혜임을 깨닫겠네 "
이때 공은 귀향해서 고려를 위하여 절의를 지킬것을 청하니 이태조는 의롭게 여기어 예를 갖추어 송별 하였다.
공은 마침내 포천의 왕방산에 은둔하며 묘덕암자를 짓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산에 올라 송악산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다.
두문불출하고 호는 왕방거사라고 고쳤다. 당시 사람들이 이산을 두문봉(杜門峰)이라 하여 지금까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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